## 왜 복식부기가 중요할까?
회계에 대해 하나도 모르던 시절에도 복식부기라는 단어는 들어봤고, 그게 회계에서 중요한 발명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대략적인 개념도 알고는 있었다. 차변과 대변이라는 게 있는데 (뭔지 모르겠지만) 그 두 가지가 소위 '아다리[^1]'가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
CFA를 준비하면서 회계를 공부하게 되었고, 나는 다시 복식부기라는 단어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복식부기의 개념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차변에는 자산의 증가, 비용의 발생, 부채의 감소, 자본의 감소를 기재하고, 대변에는 자산의 감소, 수익의 발생, 부채의 증가, 자본의 증가를 기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록들이 모여 재무상태표와 손익계산서가 된다는 것이다. 아하, 적어도 기능적으로는 왜 복식부기가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왜 복식부기가 중요한 발명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 **당시의 상황이 어떠했길래 복식부기가 그렇게 중요한 발명이었을까? 왜 차변과 대변을 나눠서 기재하도록 한 걸까?**
이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회계는 어떻게 역사를 지배해왔는가](https://www.yes24.com/Product/Goods/26043122)라는 책을 읽었다. 그리고 드디어 복식부기가 왜 역사적으로 중요한지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건 바로 경영자가 책임을 지도록 하는 문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이 글은 상기 책과 기존에 내가 읽었던 회계 서적, 그리고 내가 이해한 내용을 버무려서 쓴 글이다.
## 복식부기가 중요한 이유 : 책임의 문화
### 안 좋은 사실이 공개되면 책임을 지게 된다
구글에 '책임을 지고'라고 검색한 다음 뉴스 탭을 보자. 어렵지 않게 경영자의 위치에 있던 사람이 뭔가 안 좋은 사실을 숨기다가 그게 세상에 알려져 '책임을 지고' 물러난다는 내용의 기사를 볼 수 있다. 아래는 이 글을 쓰고 있는 24년 8월 14일에 검색했을 때 맨 위에 나오는 기사의 내용이다.
>#### [사설] OOO, OO은행 잇단 금융사고 책임지고 자진 사퇴해야
>...OO금융그룹은 전임 회장 친인척에 얽힌 350억원대 부정대출 사실을 최종확인하고도 4개월 넘게 쉬쉬하며 은폐·축소했다는 의혹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금융이 수십 명 직원의 휴대폰을 검열하고, 임원을 대상으로는 휴대폰 디지털 포렌식 사전 동의서까지 징구했다. 내부문제의 외부 누설을 막으려한 게 아니었냐는 말이 나온다. ...
위 사례처럼 안 좋은 사실이 공개되면 경영자는 본인이 원치 않더라고 그 사실에 책임을 지게 된다. 아무리 경영자라 할지라도 정보가 공개되면 사회로부터 평가를 받게 되고 정상적인 사회는 반드시 그 대가를 경영자에게 주기 때문이다.[^2]
### 과거에는 장부를 정확하게 기록하지 않았다
'안 좋은 사실이 공개되면 책임을 지게 된다.' 나 같은 소시민에게는 좋은 사실이지만,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마냥 좋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과거 국가의 경영자였던 국왕(또는 그에 준하는 권력자)들에게도 마찬가지여서 국왕들은 자신의 약점이 될 수 있는 사실들은 기록하지 않으려 하였다. 특히 돈과 관련된 사실들은 더욱 그러했다.
>#### 회계는 어떻게 역사를 지배해왔는가 中
>'감사'를 뜻하는 'audit'이라는 단어는 통치자와 군주가 회계 기록을 눈으로 보기보다 귀로 듣던 시절에 나온 것이다. audit은 '청취'를 뜻하는 라틴어 'auditio'에서 유래했는데, 알현하는 동안 왕이나 군주는 말로 읊어주는 회계 기록을 확인했던 것이다.
국왕은 국가의 자산이 얼마인지, 그 자산을 얻기 위한 자본과 부채는 어느 정도인지 굳이 세세하게 장부에 기록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기록을 해도 일종의 특권으로써 장부 조작이 용인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의 재무 상태가 어떠할지 한 번 상상해보자.
> #### 국가 A의 재무 상태
> - **자산** : 모르겠는데 보석 박힌 국왕의 왕관을 보면 일단 많아 보인다.
> - **부채** : 모르겠는데 국왕의 주장에 따르면 매우 적다.
> - **자본** : 모르겠는데 국왕의 주장에 따르면 매우 많다.
결론은 모른다는 것이다. 실제 재무 상태를 아는 사람은 국왕과 그 고용인 밖에 없다. 아니 사실 그 둘조차 잘 모를 수도 있다.
### 회계 등식 다시 보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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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 = 부채 + 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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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맥락에서 **회계 등식은 세세하고 정확한 기록을 싫어하는 국왕에게 기록을 요구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좌변과 우변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해석하는 것이다.
>#### 회계 등식에 대한 해석
>- 좌변 : "국가 자산 다 기록해"
>- 우변 : "그리고 그 자산 중에 우리 국가에서 조달한 자원(자본)이랑 다른 곳에서 조달한 자원(부채)이 각각 얼마인지 기록해"
요구 내용은 좋다. 요구대로 장부를 작성한다면 이제 국가의 재무 상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상대방이 이미 장부 조작을 숨 쉬듯 하는 국왕이라는 점이다. 국왕에게 단순히 요구를 하는 걸 넘어 위 방법으로 장부를 기록하도록 강제할 방법은 없을까?
### 정확한 장부 기록을 강제하는 방법 : 복식부기
있다. 그 방법은 위 회계 등식으로부터 유도해낼 수 있다. 먼저 장부에 적힌 내용 중 자산의 증가, 부채의 증가, 자본의 증가만 생각해보자. 이 경우에도 회계 등식은 성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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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 = 부채(+) + 자본(+)\ \cdot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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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변동 사항** 중 자산의 감소, 부채의 감소, 자본의 감소만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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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 = 부채(-) + 자본(-) \ \cdot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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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다음의 당연한 사실을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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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 a = b\ \&\ c=d,\ then\ \ a+b=c+d\ \ \&\ \ a+c=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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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1)$과 $(2)$를 합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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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 + 부채(-) + 자본(-) = 자산(-) + 부채(+) + 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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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같은 방식으로 수익의 증가는 자본의 증가, 비용의 증가는 자본의 감소이므로 아래의 등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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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 + 부채(-) + 자본(-) + 비용(+) = 자산(-) + 부채(+) + 자본(+) + 수익(+)
$
먼 길을 왔지만, 우리가 걸어온 길을 다시 보자. 우리는 회계 등식을 가정했고, 그 결과 위 등식이 나왔다($p\Rightarrow q$). 따라서 만약 위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면, 회계 등식도 성립하지 않는다($\neg q\Rightarrow \neg p$). **위 등식의 성립 여부로 회계 등식의 성립 여부를 판정할 수 있는 것이다!**[^4]
그러니 이제 위 등식을 들고 국왕에게 가서 아래와 같이 요구하면 된다.
>#### 국왕에 대한 요구사항
>"위 등식을 이제 검사할 것이오. 장부 중간에 줄 하나 긋고 왼쪽에는 자산의 증가, 비용의 발생, 부채의 감소, 자본의 감소를 기재하고, 오른쪽에는 자산의 감소, 수익의 발생, 부채의 증가, 자본의 증가를 기재하시오. 그러면 우리는 양쪽의 합이 같은지 매년 확인할 것이오. 아 그리고 왼쪽을 앞으로 차변, 오른쪽을 대변이라고 부르겠소."
그렇다. **우리가 유도한 '기록을 강제하는 방법'이 바로 복식부기인 것이다**.
### 정리 : 복식부기가 중요한 발명인 이유
이제 복식부기가 중요한 발명인 이유를 정리해보자.
>#### 복식부기가 중요한 발명인 이유
>1. 과거 경영자들은 장부를 정확하게 기록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은 재무 상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이에 경영자는 자신의 경영 활동에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었다.
>2. 복식부기는 경영자들이 장부를 정확하게 기록하도록 강제한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도 재무 상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경영자는 자신의 경영 활동에 책임을 지게 되었다.
복식부기가 탄생하지 않은 세상을 생각해보자. 경영 활동에 책임지지 않는 경영자들이 넘쳐날 테니 현대의 주식도 채권도 없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주식이 없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내가 좋아하는 주식이 탄생하는 데 일조한 복식부기에 감사하며 글을 마친다.
[^1]: 当たり, 아귀라는 뜻의 일본어.
[^2]: '정상적인'이라는 단서를 단 이유는 글을 적던 중 북한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3]: [지금 당장 회계공부 시작하라, Chapter 6 : 어떤 방법으로 기록할 것인가](https://www.yes24.com/Product/Goods/101910437)
[^4]: '그냥 회계 등식 모양 그대로 왼쪽에는 자산에 대한 내용을 다 적고, 오른쪽에는 부채와 자본에 대한 내용을 다 적으면 안 되나?'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내가 그랬다. 이 방법의 문제점은 부채와 자본 변동 없이 자산만 변동되는 거래를 기록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1 억 원으로 토지를 구매했다고 하자. 이 경우 감소한 현금과 구매한 토지 모두 자산이기 때문에 오른쪽에 적을 게 없어 거래를 기록할 수 없다.